식민지지배체제라는 좀 더 구조적 차원에서 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백낙청은 일본에 의한 한반도의 식민화가 피상적으로는 덜 서양적이고 때로는 반서양적인 특징들을 낳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대체로 서구적인 가치들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즉 일제의 반서양적 언사가 종종 한
과정에서 수탈당한 농민에 있다.
이 시기에 조선 농민들에게 보급된 농업기술은 거의 강제적으로 보급 된 것이었다. 일본 기수들이 요구하면 이익이 되지 않아도 돈벌이도 되지 않는 작물을 키워야만 했고(예 : 목화) 또 거래 방식도 규제가 되어있어서 농민들은 더더욱 재배를 통한 이익을 보기 어렵
공업도 그 절대 수치에서는 크게 성장했지만 일본인 공업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일본인 공업의 지배적 지위는 한 ․ 일 공업회사의 자본금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납입자본에서 한국인의 경우 1917년은 1911년에 비해 그 비율이 17.2%에서 12.3%로 감소했는데 반해, 일본인 자본은 같은
일제시대 전 기간을 거쳐서, 식료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60%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식료공업이라는 것은 정미소라든가, 두부공장, 간장공장등 식료품 가공공업을 말하는 것인데, 이런 것들이 공산액에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전체 공산액의 절반을 넘어 3분의 2수준이 되기
과정에 조선인 자본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였고, 제한된 범위이기는 하지만 중간 정도의 기술을 가진 기술자․기능공이 육성되기도 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문자 그대로 식민지적으로 이뤄진 근대화를 말하는 것이다. 제국주의 지배가 법, 제도, 시장을 통한 것인 만큼
일제강점기일제시기에 들어서 점차 의생활은 한복과 양복의 이중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서양복이 들어온 지 30여년이 흘러 의복 개량 운동과 함게 서양복 입기가 많이 확산됨에 따라 양복이 차츰 보급되었으나 여자는 학생이나 일부 사회 활동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대부분 긴 저고리에
갈등과 대립을 낳게 된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들은 그 당대의 문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는 산업화시대의 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1970년대 문학의 전반적인 흐름과 주요 작품들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문학에서 보이는 시대상에 대해 고찰해보도록 하겠다.
생활을 이어 가야만 했다.
(2) 일본인 시가지와 조선인 거주지의 분리
일제 강점과 더불어 시작된 농촌의 피폐화로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조선인들은 하나둘 도시 빈곤층으로 전락해갔고 도시민의 계층은 상류지배 계층인 일본인, 피지배 계층인 조선인으로 분화되어 갔다. 동시에 이들 계층의
3) 농가경제의 피폐
a) 농가수지 적자와 부채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농가경제 상태에 대해서는 1925년 9월 내무국 사회과에서 발표한 「농가경제에 관한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주를 포함한 전체 농가 호수의 46.6%에 해당하는 1,271,236호가 수지 적자였으며 지주와 자작농은
중심적 사고’, ‘식민지배의 정당화’라는 비판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유물론적 시각에서 실증적으로 분석한 이론일까? 아니면 반민족적인 식민사관일까? 다음을 통해 식민지 근대화론의 등장과정과 내용을 살펴보며 이를 분석해보고자 한다.